로마서 1장 - 너희도

 


로마서 1장 -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바울사도니까.. 바울은 사도니까.. 라고 하며 나는 애써 내게 주신 사명을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바울은 자신처럼 너희도! 라고 하며 바울처럼 내게도 사명을 감당하며 살기를 권하고 있다.
바울처럼 내 사명을 향해 달려가자.



로마서 2장 - 판단함에서 어느덧 벗어남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판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적이있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처럼 아무리 해도 그 판단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즈음엔 나도 모르게 벗어나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
나는 종종 어떤사람들과 다투어 왔다. 의견 충돌, 감정 충돌로 싸우다 보면, 상대방이 나를 안 좋게 평가할 때, 내 안에 더럽고 추한 모습이나, 이중성, 차별의식, 색안경등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이윽코 내게 완전하지 못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나보다 더 연약한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다툼이 일어날 때 내게 한 단계 영적인 발전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상대방의 말을 고분히 들어 보자.




로마서 3장 - 관측자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가끔 누군가가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정말 그런가?' 싶은 기분이 든다. 관측자는 현실을 보고, 본 것에 대하여 피드백을 한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피드백에 불과하다. 피드백이 현실이 될 수는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하나님을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낮은 차원의 존재는 높은 차원의 존재를 관측할 수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말하던지 그것에 감정적 영향을 받지 말자.


로마서 4장 - 믿음은 사랑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연애할때 가장 행복한것 중 하나가 상대방이 나를 믿어줄 때인 것 같다. 내가 진실을 말해도 상대방이 안 믿어줄 때가 있는 반면, 내가 거짓말을 할 때에 상대방이 믿어줄 때가 있다. 후자의 경우 미안하기도 하고 나중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정말 계시는지 모든 증거를 찾아 보고 확실하면 믿으려 했다. 하지만 요즘 나는 하나님을 그냥 믿는다. 그냥 그분은 당연히 계시는 거고 안 계신다고 믿으시는 분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더욱 믿는다. 나의 하나님은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키신 적이 없으시다.
어느 덧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내 안에 자리잡았음에 감사해야 하겠다.

로마서 5장 - 환난중에도 즐겁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나는 통장에 텅텅 비어도 마냥 즐겁다. 막말로 내 인생은 완전 망한 인생이다. 이혼도 했고, 이제 나이도 들어 어디서 취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모아둔 돈도 없고, 집도 없다. 앞으로 쓸쓸히 죽어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너무나 즐겁다. 하루하루가 즐거운 여행이다. 내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으로 가득차 있다. 잠깐 있다가 갈 인생에 나는 큰 기대를 두지 않는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즐겁게 살다가 갈 생각 뿐이다.



로마서 6장 - 은혜에 반응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하여 뜨겁게 회개하고 눈물 흘리는며 기도했던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예배를 찾아 자주 다녔던 때가 있다. 하지만 요즘엔 어떤 특별한 예배를 찾아 다니지 않는다. 그 은혜의 감동을 느끼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내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감동의 느낌을 받기 위해 특별한 예배를 찾아 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예배 중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순 없다. 은혜는 절대 값이고 나는 그 은혜에 반응하여 삶 속에서 죄를 하나 둘씩 버리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로마서 7장 - 내가 부족한 사람임을 항상 잊지 말고, 교회와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위 구절은 바울이 율법에 메이지 말라고 권면, 율법은 선한 것이라고 설명,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한탄하는 내용이다.
율법의 역할은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내가 선에 다다를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것에 있다.
흔히 행위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초점은 선을 이루는 것에 있다. 하지만 복음의 핵심은 은혜이다. 내가 선을 이루려 하면 자기 의가 될 것이고, 내 부족함을 고백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선을 이루려 하면, 그것은 모범적인 헌신이 될 것이다.



로마서 8장 - 예수안에 있는 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위 구절은 복음의 핵심을 설명한 뒤에 바울이 내린 결론이다. 예수안에 있는 자들은 무조건적으로 정죄함이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럼 예수안에 있는 자가 수백명을 살해하고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 해도 정죄함이 없다는 말인가?
'예수안에 있는자에게'라는 문장에 담겨 있는 '조건'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정말 '예수안에 있는 자'라면 그럴리가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으로 예수안에 있는 자인지 돌아보자.



로마서 9장 - 복음을 전하려는 뜨거운 욕구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위 구절은 유대인들이 모두 구원을 얻을 수 만 있다면 자신은 지옥에 가도 좋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의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얼만큼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갈망하는지 알 수 있다.
내게도 복음을 전하려는 뜨거운 욕구가 생기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로마서 10장 - 내 의인가? 순종하는 삶인가?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위 구절은 유대인들의 선행을 행함이 하나님게 불순종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는 셈이라는 뜻으로 바울이 한 말이다. 나 또한 바울처럼 그저 내 의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과 상관없이 선행을 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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